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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 by 나쓰메 소세키
    B-Column 2022. 3. 31. 20:44

     



    예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때 느꼈던 일본 소설의 허무함이 꽤나 감명 깊었다. 그 책을 읽을 당시 한창 인간 관계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고 있어서 더 와닿았던 건지 몰라도, 소설이 풍기는 그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얼마 전 같은 제목의 국내 드라마를 추천 받고 소설을 다시 떠올리게 되면서 그런 분위기의 일본 소설을 또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밀리의 서재에서 세계 문학 중 일본 문학을 검색해봤는데, 유일하게 나온 소설이 “마음”이었다. 밀리의 서재도 꼭 넷플릭스처럼 컨텐츠가 참 많은 것 같은데 또 찾는 건 없는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마음" 이 소설은 편집이 정말 엉망진창이다..

     

     

     

     

    ※ 결말에 대한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니, 스포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뒤로 ※

     

    “인간 실격”은 1948년에 출판된 소설이고 “마음”은 1914년에 출판되었다. 약 34년 간의 차이가 있는데 둘 다 뭔가 그 일본 근대 문학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주인공이 선생님과 친교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고,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선생님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 했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주인공에게 쓴 편지에서 털어놓는 내용이다. 솔직히 초반에는 너무 지루해서 내가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매주 누군가의 묘에 성묘를 하러 가는 내용이 나오지만 소설의 후반이 될 때까지 누구의 묘인지 알 수가 없고, 선생님이 직업도 없이 평생 노는 이유는 뭔지, 계속 백수로 살 수 있는 돈은 또 어디서 나는 건지.. 뭔 놈의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주인공이 물어보면 선생님은 항상 입을 꾹 다물어버린다. 떡밥은 엄청나게 뿌려대는데 제대로 된 내용을 말해주지 않은 채로 소설이 중반부까지 흘러가니, 답답해서 오기로 읽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드디어 소설 후반부에 선생님의 긴 고백에서 그 동안 뿌려뒀던 떡밥이 모두 회수되어서 그 부분만큼은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마음”은 주인공이 우연히 해변에서 만난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만난 적도 없는 생판 남인 선생님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고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고 싶어서 해변을 며칠 동안 배회하고 우연을 가장하여 대화의 물꼬를 튼다. 이 만남을 시작으로 주인공은 선생님에게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된다. 주인공은 명확한 이유 없이 선생님과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어하고, 좋아하는만큼 혼자 기대하며 혼자 실망한다. 반면 선생님은 좀처럼 주인공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차가운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소설 후반부에서 주인공에게 쓴 긴 편지를 통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많은 것들을 털어놓음으로써, 주인공이 선생님에게도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해준다. 주인공이 선생님에게 집착하는 과정에 대해 동성애 코드라는 주장도 소수 있다고 하나,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느낀 주인공의 선생님에 대한 집착은 조금은 과한 동경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는 엘리트다. 소설 중반부터는 대학을 졸업하고 편찮으신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내용이다. 주인공의 부모님은 대학도 나오시지 않았고 흔히 볼 수 있는 시골 어르신들로 묘사된다. 주인공의 대학 졸업을 너무 자랑스러워하시며 이를 축하하기 위해 동네 잔치를 열 생각까지 하시는데, 주인공은 이런 부모님을 고상하고 소위 배운 사람인 선생님에 비교하며 경멸한다. 


     

    “졸업까지 하다니 정말 장하다.”
    아버지는 이 말씀을 몇 번이나 반복하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아버지의 기쁨과 졸업식 날 밤 선생님께서 “축하하네”하고 말씀하실 때의 모습을 비교했다. 겉으로는 축하한다고 하시면서도 속으로는 대단치 않게 생각하셨던 선생님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 졸업에 크게 기뻐하시는 아버지보다 고상하게 생각됐다. 그러다 보니 나는 아버지의 무지에서 나온 촌스러움이 영 마땅찮아졌다. 
    - <마음> 중에서

     

     

    이 인용문을 통해 주인공이 선생님을 성적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성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부모님과 비교한단 말인가.. 소설을 검색해보고 동성애적 코드를 갖추고 있다는 일본의 정신분석학자의 주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해변에서의 만남은 조금은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한참 양보해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 이외에는 성적인 묘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아무튼, 주인공은 소박하고 순진한 자신의 부모님에 비해 차갑고 똑똑해보이는 선생님에게 인간적으로 끌렸던 것이다. 선생님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불신하고 사랑을 믿지 않는 염세적인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선생님이 태어날 때부터 성악설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다. 선생님의 부모가 장티푸스로 거의 동시에 돌아가시고, 선생님 부모의 재산을 관리해주던 작은 아버지의 배신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을 계기로 인간에 대한 불신이 선생님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선생님의 긴 편지를 통해 자신이 그렇게 혐오하던 작은 아버지의 모습을 자신에게 발견하면서, 끝내는 자신까지 혐오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선생님은 긴 편지를 통해 인간을 불신하고 자신을 혐오하게 된 과정을 서술한다. 꽤나 긴 편지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선생님이 대학 시절 하숙하던 집 딸을 연모하게 되고, 자신의 오래된 친구인 K를 하숙집에 들이게 되는데, K 또한 하숙집 딸을 연모하게 된다. K가 그 사실을 선생님에게 먼저 고백하고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 K를 시기하여 하숙집 사모님에게 딸을 달라고 먼저 선수를 쳐버린다. 그 사실을 알게 된 K는 하숙집에서 자살을 하게 되고 결국 선생님은 하숙집 딸과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자신이 친구인 K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불행하게 산다. 


    현대의 시각에서 내가 보는 선생님은 답답하고 순진한 사람이다. 용기가 없어서 기회를 몇 번씩이나 놓쳤지만 마음은 또 마냥 나쁜 사람은 아니라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 보통 사람. 선생님은 주인공에게 쓴 편지에서 고백하듯, 이 모든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을 본인도 알고 있다. 그 수많은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서 스스로도 답답해하며, ‘나도 내가 답답한 것을 안다’라고 수 차례 본인을 질책한다. 이런 선생님의 태도는 나도 아는 내 잘못을 상대방의 입을 통해 다시 한 번 지적받고 싶지 않은 자기방어적인 태도다. 누구나 그런 방어기제 정도는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 하숙집 딸까지 불행하게 만든 것만큼은 정말 이기적이다. 자신이 살던 집에서 K의 자살을 겪고 함께 몇 십년을 살아온 남편의 자살까지 겪게 된 사모님의 트라우마는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나약하다”란 말은 내가 어떤 단어보다 조심스럽고 어려운 말이다. 남의 불행을 얕잡아보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남의 불행을 감히 저울질할 수 없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 또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 땐 비로소 “나약하다”라는 말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선생님의 경우처럼.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완독한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이 소설이 전하고 싶은 바,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정리가 쉽사리 되지 않아서 독후감을 다 쓰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감정적으로는 소설 속 선생님에 대입해서 동질감을 느끼는 반면에, 그래도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이성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결론을 쉽게 낼 수 없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소설 마지막에 주인공이 선생님의 편지를 받자마자 아버지의 임종을 내팽개치고 도쿄로 올라가 선생님을 찾으며 소설이 끝이 나는데, 만약 주인공이 조금 더 일찍 도쿄에 올라가서 선생님을 만났다면, 선생님의 최후는 달라졌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주인공은 도쿄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선생님을 보고 좀 더 일찍 선생님을 찾지 않아서, 내 잘못이라고 죄책감을 느낄까? 그러면서도 선생님이 주인공에게 어떤 존재길래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않고 본능적으로 도쿄에 가는 기차에 몸을 싣나라는 생각도 들고,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너무 복잡한 감정이 들어서 한 달이 지난 아직까지도 이 소설에 대한 결론이 내 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모든 글에는 결론이 있어야 된다는 내 편집증도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그냥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라고 지나가려고 한다.  

     

     

     

    "어렸을 때 그들에게 당한 모욕과 기만을 난 이 나이가 될 때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네. 아마 죽을 때까지 그 한을 품고 갈거야. 하지만 난 그들에게 복수하지 않았네. 아니, 생각해보면 나는 한 개인에 대한 복수 이상의 일을 지금 하고 있다고 봐야지. 나는 그들을 증오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들로 대변되는 인간이란 존재를 증오하는 법을 익혔네. 나는 이게 내 식대로의 복수라고 생각하네."

    - <마음> 중에서

     

     

     

    얼마나 불행한 인생인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작은 아버지 때문에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줬던 많은 사람들에게 등을 돌렸어야 했던 선생님의 인생은. 그리고 얼마나 소심한 복수인가. 선생님은 작은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생긴 방어 기제로 인해, 정말 좋은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기회를 모두 스스로 박탈해버린 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이런 점을 정말 나약하다고 생각하는데, 작은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지 타인인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도 사정이 있었겠지'라는 게 내가 인생에서 반드시 지키고 싶은 몇 안 되는 신념 중 하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나를 다그쳐야 했다.

     

     

    나는 선생님과 완전히 반대의 의미로 나약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사람과 다양한 상황에 치이며 살아왔고, 몇 번을 겪는 비슷한 상황에서도 매번 사람을 믿고 배신 당해서 마치 처음 겪는 일처럼 무너지는 나를 나무랐던 적이 많았다. 사람은 다 이기적인데 왜 매번 정을 주고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할까. 하지만 누가 원하지도 않았던 정을 먼저 주고 배신 당하며 스스로 생채기를 내고 매번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정을 주면서 치유 받고, 이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이 남게 되었다. 운이 100% 따라준 건 아니었다. 나도 매번 리스크를 안고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에 그만큼 좋은 사람들이 나에게 진심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정을 준 사람의 배신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울증도 꺼질 듯 말 듯 살아남는 작은 불씨처럼 여전히 내 안에서 계속 남아있다. 모든 일이 지나간 일이라고, 이겨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도 누군가 기름이라도 끼얹는 날에는 우울증이 다시금 주체할 수 없는 산불처럼 커지기도 한다.

     

     

    나는 선생님보다 더 나약한 사람일 수도 있다. 불행을 끝내기 위해서 나는 결코 내 몸을 해할 정도의 용기나 결단력은 없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상황을 맞닥뜨릴 때면, '내가 죽으면 그 사람은 죄책감을 느낄까? 이렇게 고민하는 날들이 끝이 날까?'라는 생각을 살면서 수천 번은 더 했다. 누군가 그 때마다 '너 왜 그렇게 나약하니?', '겨우 그 정도로?'라는 말을 했다면 정말로 나쁜 생각을 실행에 옮겼을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고통의 척도가 다르고 그걸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의 불행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그래도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살아갈 용기가 생기는 건 내가 진심을 전했던, 책임져야 할 존재들이 떠오를 때였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작은 용기 정도는 생겼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절망을 겪고 나약해지는 때가 무조건 온다. 그럴 때 작은 용기라도 줄 수 있는 일이나 존재가 있다면, 아니면 적어도 그 절벽에서 등을 떠미는 존재만 없다면 살아갈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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