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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 좋은 이별? (2)
    L-Column 2019. 9. 18. 03:35

     

     

     

    *

    '좋은 이별 ?'은 사실 올 가을에 적어놨었던 글이다.

    그 때 나는 다른 사람과 진지하게 만나고 있었고 그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약 두 달 전에 끝이 났다.

    그 남자친구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결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사회적 배경으로도 결혼의 준비가 되어있던 사람이었고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게 목표였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감정적이고 생각보다는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과는 여러 번의 이별을 해봤는데, 그 이별들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써놨다.

    오늘은 어제 두 달만에 재회한 그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어제 내가 느꼈던 감정이 다 바래지기 전에 기록을 남겨놓고 싶었다.

    일주일 전에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왔고 얼굴을 보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 사람과 끝이 좋지 않았던 터라 처음에 나는 거절을 했지만

    그가 힘든 시간을 겪고 있고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말에 맘이 흔들려 얼굴을 한 번 보기로 했다.

    대신, 다시 이전 관계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만나기로 했다.

    그 날이 왔고 우리 집 앞에 그의 차가 서있었다.

    차에 올라탔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지금도 떠올리니 웃음이 나온다)

    그와 나는 한 바탕 웃어제낀 뒤 "왜 웃음이 나지?"라며 한 번 더 웃었다.

    그가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그의 말을 막고 얘기했다.

    "너 그렇게 헤어질 땐 언제고 이렇게 너 힘들다고 찾아온 거 되게 이기적인거 알지?"

    그는 안다며 그래서 더더욱 웃으면 안 된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했고

    나는 정말 바보같게도 그걸 보고 또 실실 웃었다.

    헤어진 시간이 무색하게(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데이트 같았다.

    그는 용서를 구하는 얘기를 했고 네 말이 맞았더라, 라는 예상했던 말들을 했다.

    어느 정도 얘기를 마친 뒤, 나는 안전벨트를 매며,

    "오랜만에 드라이브나 할까?" 라고 했고 우리는 멀리 나갔다.

    이동하는 내내 웃으며 얘기했고 드라이브를 마친 뒤 저녁을 먹었다.

    다시 차에 올라타서 이동하는 동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눈물이 났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우리 집 앞에 도착하자 그가 "왜 울어"라고 물었고

    그 말이 트리거가 되어 눈물이 겉잡을 수 없이 흘러나왔다.

    그 날의 데이트가 너무 일상같아서 눈물이 나왔고 다신 그를 못 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왔다.

    눈물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엉엉 울고 있는 내 손을 잡고 그는 속상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손을 잡고 안고 키스를 했다.

    집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에게 꼭 안겨있었다.

    그는 "그냥 다시 만나면 안 돼? 왜 안 돼?"라고 물었고

    나는 "어차피 똑같을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는 계속해서 속상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고 나는 괜찮다고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예 못 본다고 하면 너무 잔인하니까 다시 한 번 보자. 내년 이 맘 때쯤 연락할게. 인스타 지우지마."

    그렇게 우리는 지켜지 못할 약속을 했다.

    *

    그렇게 집에 우울한 기분으로 들어와 씻지도 않고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를 보다 잠이 들었다.

    한숨 자고 나니 개운했고 기분도 괜찮아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볼일을 보고 카페에 와서 어제 있었던 일을 이렇게 글로 정리하고 있다.

    무엇을 했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은 더이상 인간관계에 있어 하지 않게 되었다.

    유물론적인 발상일 수도 있지만 내가 무얼 더 했다고 해서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야 나 자신 혹은 상대를 비난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얼마 전부터 도입한 생각 시스템이다.

    나는 어제 너무 슬펐고 너무 속상했다.

    그와의 관계가 그렇게 끝나버린 게 너무 안타까웠다.

    끝이 안 좋았던 것이 너무 안타까웠으나 어제 그가 찾아와 나에게 용서를 빔으로서 좋은 클로져가 되었다.

    개같은 이별이었어서 이별하자마자 그와의 관계에 대해 단념했었지만

    어제야말로 제대로 마무리를 지은 느낌이었다. 그도 그랬겠지.

    친구에게 더이상 그를 개새끼라고 욕하고 싶지 않다.

    그가 나에게 용서를 구했다고 그가 나에게 했던 나쁜 일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나빴던 이별이 나에게 최소한 좋은 이별로 남게 되었다.

    이제 그를 좋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나에게 유일하게 좋은 이별로 기억될 것이다.

    *

    과연 내년 12월에 그와 연락이 닿을까?

    둘 다 너무 행복해서 서로에게 연락하는 걸 깜빡하고 지나갔으면 한다.

    이게 올해 나의 크리스마스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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